‘만인보’를 전시명으로 내세운 제8회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끝이 났다. 물론, 공식적인 전시만 끝이 났을 뿐이지, 내부에서는 아직도 작품 해체와 포장, 작품 발송, 연례보고서와 결산 등이 아직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매회 그러했듯이 이번 전시에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관객의 대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평가를 미술잡지, 온라인 커뮤니티, 주변 사람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해외 미술 관계자는 이미지를 미술전시장에서 조명함으로써 담론을 형성을 하는 것이 누군가는 꼭 해야 했던 일이었는데,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그 역할을 해냄으로써 많은 호평을 주었지만, 국내 미술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이전보다 대체적으로 ‘좋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지’라는 주제를 내세웠다면 꼭 사진이 전부인 것처럼 다룰 필요는 없었고 단순한 이미지 나열로 인해 진부해지는 것을 테디베어와 제프 쿤스, 중국의 국보와 같은 몇몇 흥행성 위주의 작품으로 커버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반면, 국내 비(非)미술관계자인 관객들은 오히려 이번 전시가 더욱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작품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일례로 자주 다니는 미용실에 헤어디자이너는 이번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자신은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손님들이 모두 재미있었다며 다녀오기를 권유한다면서 내게도 역시 관람을 권유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이번 전시에 대해 긍정과 부정을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먼저 긍정적인 면이다.
  첫째, 전시명에 고은 시인의 시집 ‘만인보’를 차용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고은 시인에 대해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매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시인 고은이 광주비엔날레 전시 효과를 통해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점은 문학과 미술과 하나로 연계되는 직•간접적 효과가 나타났다. 더 나아가 국내뿐만 아닌, 고은을 세계적으로 소개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둘째, 디렉터의 기획 역량에 맞추어 전시공간을 적극적이면서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었던 점이 돋보였다. 물론, 가벽을 매 전시마다 새롭게 제작해야 하는 소모적 비용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기존에 설치된 가벽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효율성에 작게나마 부딪힐 수 있는 문제도 있지만, 적어도 디렉터의 전시기획 의도대로 동선에 맞추어 가벽을 새롭게 정비하는 적극성은 질 높은 전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셋째, 동선을 길게 가져감으로써 더욱 많은 이미지들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활용이 늘어났다. 그럼으로 질적인 문제는 일단 배제하더라도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 맞게 작품을 양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났다.
  넷째, 지난 대인시장 프로젝트에 이어 재래시장으로의 두 번째 진출이라고 볼 수 있는 양동시장과 연계된 전시를 기획함으로써 재래시장에 인구유동이 증가하여 재래시장이 활성화됐다는 결과만큼은 사회에도 시사하는 점이 컸다.

  이와 달리 부정적인 평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작품의 대부분이 디렉터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꼭두각시 역할에 머무르며 작품 본연이 지닌 생명력은 찾아보기 힘든 전시였다. 디렉터의 적극적 기획의도가 오히려 작품 하나하나의 존재를 해친다는 이야기다. 디렉터의 역할에 대해 다시 다뤄져야 할 내용이지만, 짧게나마 지적하자면 전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작품이나 작가의 존재를 말하는 경우다. 예술작품이나 작가가 존재해야 전시장도, 관객도, 디렉터도 각각 의미를 갖는다는 원론적 담론의 시각에서 본 전시를 바라본다면 작품들이 과연 본연의 목소리를 잘 드러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둘째, 몇 회째 계속되는 해외 디렉터가 총감독에 임명된다는 점에서 국내 인재의 부재현상이 재차 단점으로 나타났다.
  셋째, ‘만인보’의 이름에 내포된 내용이 그저 ‘모든 사람의 발걸음’이라는 단순한 의미로만 차용되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뭔가 더 많은 담론이 담겨있는 듯한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단순성에 다소 실망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넷째, 서로 다른 작품들을 유사나 대조로 대치시킨 기획이 몇몇 공간에만 머물렀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저작권 논쟁으로 붉어질 수도 있는 작품들을 유사 비교했던 공간이든지, 전쟁을 겪은 작가와 겪지 않은 작가가 표현한 작품을 대조법으로 기획함으로써 충격에 휩싸인 관람객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유사나 대조, 병치 등의 비교하며 제시되는 전시 방식을 좀 더 많이 활용하였으면 즐거움이 배가 되었을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다섯째, 도슨트와 같은 전문 인력이 다음 비엔날레 전시로의 근속적인 근무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는 매 회마다 도슨트를 새로 공모함으로써 새롭게 교육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문제가 있다.

  정리하자면, 매회 전시가 이뤄지면서 시스템적으로 점점 정착과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매회 나타나는 문제들은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세계적인 미술전시로써 우뚝 자리서기 위해서는 한 번의 전시에 집중하는 방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10년이면 10년, 20년이면 20년과 같이 장기적 전시계획이 수립되지 않는 한, 매회 나타났던 문제들은 다음 회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자연의 소생술사, 이명호(Myoung Ho Lee)를 만나다 

  지난 2월, 월간미술에 소개된 사진작가 이명호(Myoung Ho Lee, 1975~)의 <나무>시리즈 작품을 접한 후, 내 머리와 몸과 마음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크게는 ‘예술의 종말(The End of Art)’이라는 말까지 치닫게 된 현대미술의 숱한 거대 담론들를 종식시켜버릴 답안 – 순수미술(Fine Art)의 ‘재현’ – 을 어쩌면 <나무>시리즈가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흥분에 휩싸이게 한 이유이며, 작게는 이성적 철학과 감각적•상대주의적 철학, 원자론과 유기체적 철학, 그리고 과학과 형이상학의 정의와 구분, 그리고 그에 관련된 물음들로 한참 고심하던 내게 명쾌한 정립과 적용을 가져다 준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시리즈는 그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자연 풍경 속의 나무 한 그루를 사진에 담아내었으되, 그 나무 보다 조금 더 크고 넓은 하얀 광목 천만을 설치하여 사진 속의 주인공, 나무의 바탕화면으로 삼은 작품이다. 여기에는 바탕화면이라는 작가의 최소한, 단순한 개입만 있었을 뿐이다.

  이를 철학적으로 접근해보면 광목 천은 플라톤의 이성적 철학,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본체와 속성 중에 속성을 의미하고 나무는 본체를, 나무와 자연은 장자의 감각적•상대주의적 철학, 유기체적 철학을 의미한다. 이명호의 작품에는 크게 동양사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서양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전시를 가져본 적이 없으면서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지고 알아주게 된다. 이러한 보기 드문 사례는 디렉터와 인터넷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실감하게 해준다. 지난 2007년 서울 갤러리 팩토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이 있은 후, 디렉터 홍보라씨가 국•영문의 글과 그림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바로 그 계기가 되었다. 그의 작품을 세계 사진계의 권위지인 프랑스 《렌즈 컬처》, 네덜란드 《FOAM》 등에서 극찬의 글과 함께 집중 소개가 되었고 이것이 기폭제 역할이 된다. 이에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게 되고 작가는 뉴욕 사진 전문 갤러리인 ‘요시밀로’ 갤러리를 지목하여 개인전을 열게 되는 영광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오는 5월 성곡미술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며, 2011년 학고재와 요시밀로 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가 개최될 예정이다. 나는 이미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그 곳으로의 미술여행을 떠날 준비가 이미 끝났으며, 하루 빨리 전시가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 글: 월간미술 2월호 참조
– 사진출처: 요시밀로 갤러리( http://www.yossimil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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