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를 새 주인에게 넘겨준 지 열흘이 지났건만,
아스팔트와 오토바이 타이어가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고
오토바이로 가로지르는 공기의 바람이 두 팔에서 아직 떠나지 않는다.

2009년은 답답한 환경에 억눌려 가슴이 꽉 조여진 채로 살아야 했던 한 해였다.
환경 자체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무기력감을 더욱 가중시켰고,
이에 반작용으로 나는 휴식처를 찾아야만 했다.

그 해 여름, 오토바이는 내게 꼭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과 같았다.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하고서 서울 도심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목적지가 있어 달린 것이 아니라, 길이 있었기에 달렸다.
하루는 300km 이상을 달렸더라.

답답함이 점차 커지는 요즘,
오토바이를 통해 찾았던 휴식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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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사무실까지 도보이동을 감행하기로 했다.
스마트폰에 버스 도착정보 어플을 켜고 4,5분 뒤 도착을 보고 집에서 나서는 순간부터
정류장까지의 이동, 버스, 다시 사무실까지의 이동이라면 2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를,
승용차로는 15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를,
오토바이로는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를.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와 함께 도보로 출발한다.

2.6kg 노트북과 가방, 우산을 야무지게 들고 광주역 후문쪽을 지난다.
출발한지 5분이 지났건만, 시원한 냉방이 잘 되어 있을 커피숍이 눈에 들어온다.
공사 자재와 공구를 파는 가게들 앞에는 시멘트를 열심히 차에 싣는 아주머니 모습도 보인다.
작은 체구의 여자와 공사 자재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안쓰러운 관계같다.
삶의 노동은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분명하지만,
먹고 살아야하는 생계 유지 관점에서 어쩔 수 없는 노동의 모습은 마음을 늘 무겁게 한다.

광주역 옆 조그만 골목길을 가로지른다.
골목길 담벼락 너머에는 광주역 공터에서 누가 키울까 싶을 채소밭이 보이고 철도길도 보인다.
골목길 담벼락에는 10년도 훨씬 이전에 초등학생들이 그렸을 뜻 모를 벽화들로 채워져 있다.
시간에 노출되어 이미 색바랜 벽화들의 보존 문제가 바로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가 보다.

빗방울이 부슬부슬 내리더니 이윽고 걷잡을 수 없이 마구 떨어지는, 그래서
우산도 어쩌하지 못하는 소나기는 내 발걸음을 홈플러스에서 멈추게 한다.
땀으로 가득한 내 등판은 이미 홈플러스의 시원한 냉방을 무척이나 반긴다.
다만 비가 멈출 때까지 앉아있을 휴식처가 마땅하지가 않다.
홈플러스에는 오로지 소비를 유도하는 휴식처만이 존재할 뿐이다.

10여분이 지나 잔잔해진 빗방울 속으로 우산을 펴고 다시 걷는다.
한손에는 우산을 펴고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어깨에는 노트북 가방이 걸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내가 어쩌자고 걸어왔을까?
이것은 운동의 의미도, 버스비를 아끼는 의미도 없다.
땀으로 끈적끈적 젖어있는 옷은 선풍기 하나 없는 사무실 도착을 전혀 반기지 않는다.

그렇게 동네 골목을 지나 도착한 사무실에서 확인한 시간은 출발한 지 딱 한시간이다.
곧내 냉방이 잘 된 장소를 찾지만, 갈 곳이 없다.
시장 넘어 냉방과 인터넷이 되는 커피숍으로 노트북 하나 들고 피신하다시피 쫓겨 나온다.
시간 활용의 비효율성, 금전적인 비효율성, 여름의 도보 이후 후폭풍을 감안해서
아침에 출근하는 다인이 차를 타고 가지 못하고 늦잠을 탄 게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_-

내가 어쩌자고 걸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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